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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게임의 일상화’입니다. 프로스포츠 경기부터 디지털게임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게임이 사람들의 일상을 포획, 지배합니다. 게임은 경쟁과 대결의 논리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사람들의 의식을 그에 묶어둔다는 점에서, 현대의 시장주의 문화와 매우 정합적입니다. 이런 문화에서 사람들은 국내 정치는 물론 국가간 전쟁까지도 게임처럼 인식합니다.
어떤 여론조사 회사가 전화로 제게 “어느 프로야구팀을 응원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특별히 응원하는 팀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저는 ‘프로야구 무관심층’에 속하지만, 그 여론조사 기관은 아마 ‘프로야구 중도층’으로 분류할 겁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무관심층‘과 ’중도층‘은 대체로 겹칩니다.
프로야구 ‘적극 관심층’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안 좋을 경우 팀워크 문제인지 감독의 작전 문제인지 구단 운영 문제인지 스스로 분석하고 자기들끼리 토론해서 답을 찾습니다. 그러나 ‘무관심층’ 또는 ‘중도층’은 그런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대개는 언론이 제시하는 답을 그대로 수용합니다. 모든 분야에서 ‘무관심/중도층’은 뉴스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습니다. 언론이 ‘중도층’을 강조하는 것은, 자기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욕망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언론들은 민주당과 관련해서는 ‘강성 지지층’을 비난하고 ‘중도층’을 배려하라고 요구하면서도, 국힘당과 관련해서는 그런 요구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민주당을 향해 ‘강성 지지층’과 결별하고 ‘중도층’ 쪽으로 이동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명료히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민주당과 국힘을 ‘별 차이없는’ 정당으로 만들어 기득권 엘리트 지배체제를 영속시키려는 욕망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이 이런 담론을 열성적, 반복적으로 퍼뜨리니, 민주당 내 ‘적극 지지층’뿐 아니라 국회의원 중에도 이 주장에 빠져드는 사람이 생깁니다.
저같은 ‘프로야구 중도층’을 야구장에 끌고 가 어느 팀 응원석에 앉히는 사람은 같은 '중도층'이 아니라 그 팀의 ‘적극 응원층’입니다. 투표할 생각 없던 사람에게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 술 사주고 밥 사주면서 투표장으로 끌고 가는 사람들도 특정 정당의 ‘적극 지지층’입니다. 엄밀한 의미의 ‘중도층’과 이런 ‘무관심/중도층’ 중 어느 쪽이 많은지는 각자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을 겁니다. ‘적극 지지층’이 중도층을 밀어내는지 끌어들이는지에 관해서는 언론이 당연한 진실인 것처럼 주장하는 내용들을 그대로 믿어선 안 됩니다.
술에 취한 채 지하철에 타서는 특정 정치인과 정당을 지지하라고 주정부리는 사람이 더러 있기는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적극 지지층’이나 ‘강성 지지층’이 아니라 ‘저질 지지층’이라고 해야 합니다. 뒷유리에 무슨 봉사단이라고 새긴 자동차 운전자가 난폭운전을 하면, 혐오감은 그 봉사단으로까지 향하게 마련입니다. 현재 언론들은 ‘적극’ = ‘강성’ = ‘저질’이라는 담론을 만들어 유포하려 들지만,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적극과 저질을 구별할 수 있을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만들어 대접하는 행사장에 초청된 200여 명의 기자들 중 채상병의 억울한 죽음이나 경제위기, 방심위와 방통위를 동원한 언론탄압, 서민생활의 어려움 등에 관해 질문한 기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윤 대통령 스스로 ‘조언과 비판을 듣겠다’고 했는데도 ‘조언과 비판’을 한 기자도 전혀 없었습니다. 절대다수는 그저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고선 이 ‘보여주기 행사’를 극구 칭송했을 뿐입니다. 이런 언론이 제시하는 ‘해법’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간, ‘무관심층’에서 ‘바보층’으로 격하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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