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정치 체제는 서로에게 존재이유가 된다.
지금 내가 사는 국가는 어떤 체제인가?,
민주주의, 사회주의, 사민주의, (신)자유주의 ... 그리고
자본주의(?) ... 사실 여기서 자본주의는 정의 내리기가
상당히 어렵고 애매하다. 자본주의는 한 국가 정치 체제에
편입된 형태로 운영되는 정교한 경제모델의 한 시스템일 뿐,
정체(政體. political system)라고 하기엔 논의의 층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속한 국가들은 물론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자본주의는 원활하게
작동된다. 재화와 서비스가 수요와 공급 원리에 따라
가격 조정이 (비교적)자유롭게 일어나는 '시장'만 존재한다면
자본주의는 정치적 이념 따위는 무시한 채, 그 나라에
차분히 착근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속한
국가들과 사회주의 국가들 상당수는 자유시장 경제와
사회주의 경제 모델이 혼합된 형태로 운영되는 소위 '혼합경제'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유시장경제 기반위에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무상교육, 기초노령 연금 등이 더해져
운영되고 있으며, 미국, 유럽, 일본 등 OECD 국가들 대부분이
우리처럼 시장경제 기반위에 사회주의적 (복지)요소를 도입해
혼합경제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사는 국가가 현재 어떤 형태의 정치 체제인가에 따라
국가가 정의(Definition)된다는 점이다.
"악마는 그대들보다 나이먹었다. 따라서
악마를 이해하려면 그대들도 나이먹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학을 한다면 누구나 거쳐야할 막스 베버(Max Weber)가
'직업으로서의 정치(Politik als Beruf)'에서 했던 말이다.
국가의 유기적 구성체(구성원) 중 국가 운영의 핵심은 바로
정치(정당)와 정치인이며, 다시 정치와 정치인의 존립 기반은
국민(People)으로 귀결된다! 결국 한 나라의 국민은
자신이 사는 국가 그 자체이자 근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정치)권력을 손에 쥔 수많은 이들이
국가의 근원을 파괴하고 굴복시켜려는 시도를 많이 보아왔고,
역으로 국가가(제도 시스템) 그들에게 그런 유혹의(권력욕)
손길을 수시로 내밀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사회 전반에 다양한 형태의 독재가 고개를 드는데, 이때
독재의 형태는 절대 권위를 확보한 한 개인의 형태(ex.히틀러,
마오쩌둥, 김일성, 박정희) 일수도 있고, 세력화된 어떤 거대한
집단, 이를테면 노조나 정당 또는 가치관의 연합인
이즘 주의자( ~ ism) 일수도 있다.(ex. 페미니즘, 종교원리주의,
환경기후주의, 채식주의, 한국에는 검찰주의자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수많은 당위적 난관들과 마주쳐야 한다.
상대 진영의 마타도어, 자기진영 안에서의 치열한 권력투쟁,
외부 독재의 악마적 유혹, 혼자 살기 위한 기회주의와 자기기만.
이 모든 것들을 베버는 악마라 하였다. 인류가 정치체제를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악마는 쉬지 않고 진화해 왔다.(나이 먹었다)
순수한 이상과 열정, 꿈을 가지고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
악마와 싸우면서 끝까지 자기신념을 지키는 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정치인으로서의 참모습으로 보일수는 있으나
베버는 이런 정치를 반드시 경계하라고 충고한다.
정치는 낭만도 아니며 자기 도취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을 품은 정치인이 열정을 다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고집하는 사이에 현실정치 세계에서는 국민들의 삶이 처참히
파괴되는 결과를 낳을수도 있기때문이다.
(ex. 급격한 임금인상으로 인한 영세 자영업자들의 인건비
부담증가, 투기적 자본에 항상 틈을 보이는 서민 주거안정
대책과 느슨한 대출 제도(HUG), 법효력의 시간차 때문에 발생하는
임차인의 대항력 문제, 최근 환율 안정 및 거래 활성화 목적으로
도입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문제 등)
그렇다면 정치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열정을 다해 쏟아부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그 어떤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모두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베버는 이를
'책임 윤리'라고 했으며, 앞서 설명한 정치적 이상에 취해
자기 신념만 고집하는 것을 '신념윤리'라고 했다. 그리고
신념윤리는 책임을 회피한다. 자기 신념은 무오류의유일한
선(善)이기 때문에 나쁜 결과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전적으로
자신의 차원 높은 신념체계에 대한 세상의 이해부족 탓인 것이다.
그렇다고 책임 윤리만 유일하게 강조하다보면 정작 자신의
진짜 정치적 신념과 정체성을 잃을수도 있다. ~ 왜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보다는 지지자들의 단순 민원 해결 창구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 지지 바깥의 영역은
오히려 슬럼화 된다.(@정치적 이상의 상실은 또 다른 영역의 소외)
결론적으로, 인류가 정치를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나이를 먹고 있는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에서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둘 사이를 조율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막스 베버가 강조했던 핵심이다. 그리고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강조했던 "정치인은 선비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말 또한 어찌보면 베버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악마는 말 그대로 저렇게 큰 악마인데,
우리의 피부에 와 닿지도 않은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기만하며
정치를 업으로 하는, 악마 처럼 나이 먹은 인간들이 너무나 많은
현실이다. 베버식으로 정의하면 '오직 신념주의자다!'
그들은 내부 비판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자기들 바깥, 즉 외부는
모두 적이다. 이런 행태는 극단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며,
이는 종교 언어로는 구원에 목마른 맹신자들을 생산하고,
세속의 언어로는 소위 '빠'를 생산하는 강력한 동력원이 된다.
처음엔 거창한 담론을 들고 공론장에 나와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만
애초 책임이 수반되지 않는 허울뿐인 신념체계는 곧 바닥이 드러난다.
결국 내부 결속을 위해 그들은 더욱 더 안으로만 뭉쳐지며
극단주의에만 의지하게 된다. ...사태가 여기까지 오면 이제
보통의 시민들은 그들을 말이 안 통하는 "(극좌.극우)꼴통"으로
낙인찍고 사회적 심판을 한다. 수학적으로 보면 벨커브(Bellcurve)
모양의 정규분포에서 그들의 포지션은 좌우양극단에 위치에 있다.
실제 현상에서 아주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인 것이다.
물리적인 볼륨 또한 그들은 소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는 극단의 목소리가 굉장히 크게 들리는 이유가 뭘까?
초래되는 결과 값이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서부지법 폭동,
올공사태, 정치인에 대한 물리적 테러, 동덕여대 락카칠 사태,
배제고 스타벅스 사태 등) ~ 인터넷에서도 극단적 신념주의자들의
행태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직적으로 합을 맞춰 짧은 시간에
대량의 글을 배설하며 자신들의 신념이 마치 주류인것처럼
양적인 부분에 집착한다. 그러나 이론의 깊이가 없다보니 대부분의
글들은 읽을 가치가 없고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기가 일쑤다.
이에 대한 반발심리로 마치 순환 논법처럼 그들은 다시 더 많은 양에
집착하며 전보다 더 멀리 양끝으로, 마치 절벽 아래로 추락하기
직전에 서있는 것처럼 극단까지 이동하게 된다. 그렇게 최악의
극단 지점에 도착했을때 이제 이들의 신념은 신앙의 수준으로
변태되어 종교가 된다. 철학 언어로 풀어보자면, 헤겔 변증법의
양질전화(量質轉化)이다. ~ 액체 상태의 물은온도를 99도까지
높여도 계속 액체 상태지만 100도를 넘어가는 순간(임계점)부터는
기체라는질적(물성) 변화가 일어난다. 즉 양적 변화(온도의 크기)가
계속되면 어느 순간부터(임계점)는 물체에 새로운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손흥민이나 김연아도 수없이 많은 훈련과 시간, 에너지의
양적 반복이 누적되고 쌓여서 어느 순간 그들 내부에서 세계적인
선수로서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각설하고 신념주의자들의
극단적 행위의 양적 반복은 그들을 (사이비)종교 광신도라는
질적 변태로 이끈다. 이 지점부터 그들에겐 그 어떤 소통도 더 이상
불가능하다. 특히 반지성주의 행태가 매우 강하게 표출되는데,
존경받는 학자나 전문가가 진심을 담아 얘기를 해도 경멸과 혐오와
멸시로 되받아치며 거칠게 공격을 한다.
"꼴에 박사했다고 어디서 훈계질이냐?!"
"교수면 뭐해! 너가 우리의 신념체계를 알아?!"
"정치 30년하면 뭐하냐고?! 우리보다 정치를 조또 모르는데!"
재밌는 점은, 언제 절벽 아래로 추락할지 모르는 정규분포
양극단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며,
깨어있는 시민의 연합 내지는,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자신들뿐이라는 일종의 메시아 컴플렉스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정치적.사회적 아젠다나 거대 담론의
주체는 반드시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증상도 함께
나타나고, 이는 곧 집단 광기로 이어진다. 그러나 광기를 해체하면
남는 건 오직 무력한 개인과 허무뿐이다. ~ 그래서였던가?
마르쿠제는 악이 판치는 세상에서 구원이나 치유를 권하는 자를
반드시 멀리하라고 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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