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실무자들 "기동대 30분 내 도착 가능, 이태원 참사 막을 수 있었다"
이태원 참사 부실대응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측이 12일 법정에서 "이 문제(핼러윈 인파 대비)를 유일하게 챙긴 사람은 어떻게 보면 김광호"라고 말했다. 김 전 청장 본인은 참사 전 두 차례에 걸쳐 핼러윈 축제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했었다며 서울청 부하들과 용산경찰서 등 일선 하급자들에게 책임을 돌린 것이다.
김 전 청장 측은 용산경찰서가 제대로 대응했다면 기동대 배치 없이도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도 주장했다. 기동대가 없어서 인파 관리가 안 된 게 아니다. 실제 당시 용산 이태원 파출소 안에는 16~18명의 경찰관이 있었다"고 했다.
실무 경찰들의 진술 "기동대 요청 있었다면 30분 안에 이태원 도착"
하지만 검찰이 이날 공개한 경찰 실무자들의 다수 진술은 김 전 청장 주장과 정반대였다. 기동대만 배치됐더라도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상부의 지시만 있었다면 서울청 차원의 기동대 배치가 언제든 가능했다고 수사기관에서 공통적으로 진술했다.
경찰 경비안전계 담당 김아무개씨 : "기동대가 출동했으면 인파 쏠림 현상이 현저히 감소했을 것이다. 기동대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면 이러한 다중 운집으로 인한 안전사고 우려 사항을 사전에 발견하여 신속하게 보고 검토하고 빠르게 대처해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
서울청 경비기획계장 최아무개씨 : "핼러윈 관련해서 저희 경비과에 아무런 요청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중략) 일단 타지역에 부대를 추가로 지원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서울청이나 용산서 차원에서 임시 편성 부대를 충분히 가용할 수 있었다."
서울청 경비안전계장 김아무개씨 : "서울청장님 지시가 있었다면 바로 (기동대 배치가)가능했다. 당시 집회 종료 전이라도 관련 지시가 있었다면 일부 부대는 우선적으로 배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서울청 경비부장 윤아무개씨: "사고 당일 20시 58분 기준으로 당시 부대가 전부 복귀하지 않았기에 동원됐던 경찰 부대는 전부 지원이 가능했다. 서울경찰청 요청 시 인접한 3개 경찰 기동대는 즉시 배치 가능한 상태였다. 늦어도 30분이면 이태원까지 도착할 수 있었던 상황이다."
서울청 경비안전계 기동대 경력 담당 백아무개씨 : "당일 20시 44분부터 경력 조정이 시작됐으며, 총 3차례 걸쳐서 경력 조정이 있었다. 20시 55분부터 58분 사이에 용산서장이 직접 지휘하는 8개 경찰관 기동대 1개 제대가 부대 복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만약 20시 58분에 경찰 부대 경력 지원 요청이 있었다면, 20시 44분부터 복귀하는 부대는 장비·인력이 현장에서 철수하고 승차해 이동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되므로 부대로 출발하지 못했을 걸로 추정되기에, 동원된 전체 67개 경찰기동대는 모두 지원이 가능했다고 판단된다."
- 검찰이 공개한 경찰 실무자들의 수사기관 진술 내용
이태원 참사(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6분) 당일, 참사 현장에서 불과 1400미터 떨어진 용산 대통령실 앞에는 대규모 반정부 집회 관리를 위해 무려 67개의 경찰 기동대가 배치돼있었다. 해당 시위는 당일 오후 8시 33분께 종료됐다. 이후 이 기동대를 철수시키지 않고 이태원에 재배치했다면 참사를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게 검찰 측 주장이다. 김 전 청장은 해당 집회 종료 후 이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퇴근했다.
검찰은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159명 가운데 당일 오후 11시 1분경까지 생존해있던 피해자가 있다면서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검찰 측은 "(이태원 참사)사망자 피해자 A씨는 22시 42분경 자신의 휴대전화로 신고했고, 사망 피해자 B씨는 23시 1분경 자신의 휴대전화로 신고해, 일부 사망 피해자의 경우 늦어도 23시 1분경까지는 현장에 생존하고 있었음이 명백하다"고 했다.
공판과정 보다가 혈압오르겠네.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기동대가 한개 부대라도
투입됐으면 159명이 사망하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군요.
그리고 10월 29일 당시에는 이태원 인근에
3개 기동대가 30분 안에 이태원에 도착할 수
있었고 최대 67개 기동대를 동원할 수 있었다.
경찰이 근무복 입고 경광봉이리저리 흔들며 서 있기만 해도 70~80%사람들은 질서를 지킵니다.
심리학자가 있는 용와대와 고위급에서 일부러 사람 죽이려한 것이라 강력하게 의심됨..
세월호 때 떠돌던 것 처럼 인신공양과 각자도생의 신호로 사회질서 파탄을 노린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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