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냈습니다.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 졸업함과 동시에 가족들이 (부모님. 형.누나) 다 도시로 나왔는데
저만 무슨 문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전학이안되서어 시골 중학교에서 1학기를 마치고 도시로 전학을 올수있었습니다.
그때 1학기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셋이서 지냈는데 할아버지께선 저 고1때 돌아가시고 할머니께선 저번주 에 돌아 가셨습니
다.
할머니...전 항상 할매 라고 불렀는데...울 할매 하면 생각 나는건 딱하나 " 진미채" 오징어채 말린거 볶아준 반 찬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도시락을 싸보질 않으셨고 시골에 반찬 할만한게 없어서. 엄마는 항상 제가 주말에 도시로 나와서 일요일에 들어갈
때
제 책가방에 진미채를 넣어 보내면 할머니께선 항상 그걸로 도시락 반찬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전 늘~ 진미채 싸온다고 별명이 "오징어채"(그때 진미채라고 하지않음) 였고...단한번도 바뀌지 않는 진미채 싫어서 학
교 화장실에 몰래 갔다 버리기도 많이 했었네요 그래서 성인이 되서도 한동안 진미채를 먹지도 않았고...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 아빠가되어 어느순간 진미 채가 맛있어 지기 시작하더니 자주 찾아뵙지 못한
할머니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러던중 갑작스레 들려온 할머니 부고 소식에 장례식장으로 달려갔고
할머니 입관할때 잡아드렸던 딱딱한 두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오늘 우연히 기안84 할머니 김밥 이야기를 보는데..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네요...
나도 울할매 한테 맨날 진미채 싸주지 말라고 투정부리고 도시락 발로 차고 진짜 철없는 행동을 했는데 .....
4학년부터는 김치만 싸달라고 해서,
다룬애들꺼 뺏어먹고 다녔죠.
중학교졸업까지 그랬으니.
진미채 지금도 안먹게되는 반찬입니다..
맛을 알고 그립지만. 싫네요. ㅎㅎ
할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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