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서신 내용으로 볼 때 명나라는 처음부터 한반도 땅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고려말에 고려가 차지한 땅을 거의 다 인정해주고 있었습니다.
명나라 주원장은 옛 철령성(요나라, 금나라 명칭)에 철령위(명나라 행정기구)를 설치하니 그 이남은 고려땅이고 철령땅의 동서와 북은 명나라가 관리하겠다고 통보합니다. (요동반도와 만주를 관리하겠다고 통보함)
그런데, 우왕이 갑자기 강원도 철령고개를 기준으로 그 위쪽을 명나라가 관리한다고 하는 줄로 착각하는서신을 보냈습니다.
(강원도) 철령 위에 있는 땅은 대대손손 고려땅이라고 하는 서신을 보냅니다.
이에 명나라는 요동반도의 철령 땅이 고려 땅이었던 적이 없고, 고려 땅은 원래 압록강 이남이 아니냐 합니다.
대략적으로 압록강 상류를 기준으로 했을 때 그 이남은 고려 후기의 고려 땅이 맞는 듯 합니다.
압록강 기준으로 고려땅이라는 서신을 받은 우왕은 이에 반발해서 요동반도에 있는 철령 땅에 있는 명나라 행정기구 철령위를 정벌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이상하네요.
명나라가 처음에 서신을 보내기로 요동반도의 철령 땅에 철령위를 설치하니 그 남쪽은 고려땅이라고 명시합니다.
1387년 12월 미상 (음)
〈홍무(洪武) 20년(1387)〉 12월에 호부(戶部)에 명하여 고려왕에게 자문을 보내, “철령(鐵嶺) 북쪽과 동쪽, 서쪽의 땅은과거에 개원(開元)에 속했던 곳이므로 요동에서 그를 통할해야 합니다.철령의 남쪽은 과거에 고려에 속했던 곳이므로 고려에서 그를 통할해야 합니다. 각각 강역의 경계를 바르게 하여 침범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하게 하였다.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cnkb_070r_0220_0210
이에 고려 우왕이 반박 서신을 보내는데, 강원도 철령 고개 바로 위에는 대대손손 고려 땅이고 공험진까지 고려 땅이라고 합니다.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kr_137r_0010_0020_0160&types=r
명에 철령위 설치의 중지를 요청하는 표문을 보내다
1388년 02월 미상 (음)
명(明)에서 철령위(鐵嶺衛)를 세우고자 하니, 우왕이 밀직제학(密直提學) 박의중(朴宜中)을 보내어 표문으로 청하기를,
“하늘은 넓고 커서 만물을 덮어 키움에 남김이 없으며, 제왕이 일어남에 영토는 반드시 바로잡아지니, 이에 비루한 간청을 다하여 위로 성총을 번거롭게 하고자 합니다. 저희 나라는 먼 땅에 궁벽하게 있어서, 땅이 작고 얼굴에 난 사마귀와 같으니, 땅의 척박하기가 돌밭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물며 동쪽 귀퉁이로부터 북쪽 변방까지 산과 바다를 끼고 있어서 형세가 매우 편벽됩니다. 조종으로부터 전해내려온 데에 구역이 정해져 있으니, 철령(鐵嶺) 이북을 살펴보면, 역대로 문주(文州)·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함주(咸州) 등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公?鎭)에 이르니, 원래부터 본국의 땅이었습니다. 요(遼)의 건통(乾統) 7년(1107)에 동여진(東女眞)이 난을 일으켜서 함주(咸州) 이북의 땅을 빼앗아 점거하니, 예왕(睿王, 예종)이 요(遼)에 고하고 토벌할 것을 청하여 병사를 보내어 쳐서 회복하고서, 함주에서 공험진 등까지 성을 쌓았습니다. 원(元) 초기 무오(戊午, 1258)년에 이르러 몽골의 산길대왕(散吉大王, 산지대왕)·보지관인(普只官人, 부지르노얀) 등이 병사를 거느리고, 여진(女眞)을 정복하던 때에, 본국의 정주(定州)의 반란민인 탁청(卓靑), 용진현(龍津縣) 사람인 조휘(趙暉)가 화주(和州) 이북 지방을 가지고 나아가 항복하였습니다. 금(金)의 요동(遼東) 함주로(咸州路) 부근의 심주(瀋州)에 쌍성현(雙城縣)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본국의 함주 근처 화주의 옛날에 쌓은 작은 성 2개를 모호하게 주청하여 마침내 화주를 가지고 쌍성이라고 모칭하고, 조휘를 쌍성총관(雙城摠管)으로, 탁청을 천호(千戶)로 삼아 인민을 관할하게 하였습니다. 지정(至正) 16년(1356) 사이에 원 조정에 아뢰어, 윗 항의 총관과 천호 등의 직을 혁파하고, 화주 이북을 다시 본국에 속하게 하였는데, 지금까지 주현의 관원을 제수하여 인민을 관할하게 하였습니다. 반적으로 인하여 침탈당했다가 대방(大邦)에 아뢰어 복귀시킨 것입니다. 지금 성지를 받들어 보니, ‘철령 이북·이동·이서는 원에서 개원(開元)에 속하였으나, 관할하는 군민들도 요동(遼東)에 속하게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철령의 산은 왕경(王京)으로부터 거리가 겨우 300리이며, 공험진을 변방의 경계로 삼은 것은 1, 2년이 아닙니다. 다행히도 〈선왕이〉 밝은 시대를 맞이하여 제후의 법도에 맞추어 직임을 수행하여 그 땅이 이미 〈저희〉 판도에 들어왔습니다. 다시 미천한 제 몸에 이르러, 성은을 입어 특별히 10행의 조서를 내리시어 한결같은 인(仁)으로써 대하시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넓은 도량으로 포용하시고, 두터운 덕으로 어루만져 주셔서, 몇 개 주의 땅을 하국(下國)의 땅으로 삼아 주십시오. 신은 삼가 더욱 나라를 다시 만들어주신 은혜[再造之恩]에 감읍하며 만수무강을 항상 축원하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고려의 서신을 본 명나라 주원장은 고려의 땅은 원래 압록강을 경계로 그 남쪽이 아니냐고 맞 받아칩니다. 어째서 요동반도에 있는 철령이 고려땅이냐고 합니다.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cnkb_070r_0220_0220
일자
1388년 04월 미상 (음)
〈홍무(洪武)〉 21년(1388) 4월에 우왕(王禑)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철령(鐵嶺)의 땅은 실로 그들이 대대로 지켜온 곳이라고 하면서 예전대로 하게 해줄 것을 청하였다. 황제가 말하기를, “고려는 과거에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는데, 이제 철령이라고 꾸며 말하니 거짓임이 분명하다. 짐의 말로써 그들을 깨우쳐 그들로 하여금 본분을 지키면서 흔단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라.”라고 하였다.
이후 고려 우왕과 최영은 요동반도의 철령 땅에 설치된 철령위를 정벌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모집합니다.
너무나 황당하네요.
이러니 이성계가 구데타를 일으킬 수 밖에 없죠.
처음부터 명나라는 한반도 북쪽 땅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만주와 요동반도를 차지해서 관리할 생각이었네요.
홍무(洪武) 21년(1388) 3월에 옛 철령성(鐵嶺城)에 설치하였다. 〈홍무〉 26년(1393) 4월에 옛 은주(?州)의 땅으로 옮겼으니 이는 곧 지금의 치소이다. 【서쪽에는 요하(遼河)가 있고 남쪽에는 범하(汎河)가 있으며 또한 남쪽에는 소청하(小淸河)가 있는데 모두 요하로 흘러 들어간다. 또한 남쪽에는 의로성(懿路城)이 있는데, 홍무 29년(1396)에 의로천호소(懿路千戶所)를 이곳에 설치하였다. 또한 범하성(范河城)이 위(衛)의 남쪽에 있는며 범하성(汎河城)이라고도 하는데, 정통(正統) 4년(1439)에 범하천호소(汎河千戶所)를 이곳에 두었다. 동남쪽에는 봉집현(奉集縣)이 있는데 즉 옛 철령성으로 고려(高麗)와의 경계에 접해 있으며, 홍무 초년에 현(縣)을 설치했다가 곧 폐지하였다. 또한 함평부(咸平府)는 원의 직예(直隷)요동행성(遼東行省)이다.지정(至正) 2년(1342) 정월 항복하여 현이 되었다. 홍무 초년에 폐지하였다.】 남쪽으로 도사(都司)까지 240리 떨어져 있다.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cnkb_070r_0040_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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