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역을 한달정도 앞두고 있는, 강원도 춘천에서 복무중인 군인입니다.
전역 전 마지막 휴가를 앞두니 기분이 이상해서.. 남기고 싶은 저의 이야기를 어딘가에 써볼까 하다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이야기 할 사람도 없고 해서 이곳에 올려봅니다.
원래 저는 군대에서 죽을 생각으로 입대를 했었는데요.
중고등학생 때 부터 저를 힘들게 하던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성인이 되어 대학에 갔을 땐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혼자서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집이라도 아무 걱정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랬지만, 갓 성인이 된 저는 어린 모습의 탈을 다 벗지 못 했는지
사소한 이유로도 부모님과 갈등이 생기곤 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 내고,
그 감정들은 또 다시 부정적인 생각들을 만들어 벗어날 수 없는 무한 굴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20대 초반의 방황은 정리되는 일 하나 없이 해결 해야만 하는 일이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거들떠도 보지 않던 담배를 피게 되고, 밤낮이 바뀌어 인터넷 속에 살고,
사람이 없는 새벽이 되어서야 밖에 나가 두세시간 씩 산책을 하곤 했습니다.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제 모습이 무섭고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 것 같아 알바도 해보고,
부모님 몰래 상담도 받아 보고 했지만 그닥 나아지는게 없었습니다.
괴로운 나날들에 도와주는 사람, 좋은 일 하나 없는 것은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22년 가을, 사촌이 군대를 간다는 말에 현 상황에서 도피하고자 신청했던 특기병에 합격하여
논산의 육군훈련소에 입대를 했습니다.
원래 이런 생활을 해왔다는 듯이 어려움 없이 훈련,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니 끔찍한 통증과 함께 몸이 안 움직여지더군요.
훈련소 안의 지구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니 허리디스크랍니다.
정말로 제가 죽을 이유가 생긴 것만 같았습니다.
완치 될 수 없는 질병에 걸렸다는 생각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태생이 겁쟁이였는지 사격 훈련 때는 차마 저에게 총구를 돌릴 수 없었고,
세열수류탄 투척 훈련 때는 제 앞에 서서 "잘 할 수 있지"라며 격려해주는,
많아 봐야 사촌 누나뻘 되는 조교님을 보고선 "내가 미쳤구나" 하고 정신을 바로 잡고 던져버렸습니다.
동기인 형들과 서로 아픈몸을 이끌고 각개전투도 하고, 완전 군장 행군까지 모두 완료,
훈련소 과정을 수료 하고, 운전병으로 지원했었던 저는 홍천의 1야수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밖에서는 한번도 본 적, 겪은 적 없는 어마어마한 강설량과, 추위는 한달간의 기간동안 저를 매우 힘들게 했지만,
그곳의 동기들과 같이 차 얘기도 하고, 살아온 이야기도 하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동기 형들이 사줬던 냉동음식, 고열로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웃으며 했던 제설, 조교님들이랑 나누던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 군용 5톤 트럭을 타고 설경을 보며 달리던 그 날들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야수교의 즐겁던 순간들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춘천 소재지의 모 부대로 자대를 배정 받게 되었습니다.
자대에서는 흔히 말 하는 폐급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선임들이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안에서 히터 바람을 쐬면서 쉬며, 일은 후임들에게 짬 때리기 바빴고
정작 작업 하는 것들을 보면 책임감 없이 대충대충 해버리는 모습이 너무 미웠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저의 태도도 매우 문제였습니다.
일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선임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자주 보이곤 했거든요.
맞선임에게 다른 부대로 가버리라는 말도 들어 봤으니, 어지간한 사람보다도 정도가 심했겠죠
첫 휴가를 다녀오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제 막 한 집단에 들어간 저의, 지금까지의 태도가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했던 것 같습니다.
매형이 그런 불합리함이 있으면, 적어도 그 조직에서 인정을 받고 소리를 내라고 했었던 말을 항상 상기시켰습니다.
허리디스크가 심해져 그에 따른 방사통에 일상생활 조차 하기 힘들어져도,
동기들의 비겁한 행동에 피해를 보더래도,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했습니다.
1년 쯤 됐을 때였을까요.
맞선임이 전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 있어라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위병소를 지나갔고, 선임이 쓰던 생활관 빈자리를 제가 쓰게 되었습니다.
맞선임의 전역 다음 날은 제 생일이었는데
생일 날 갑자기 카톡이 오더군요.
맞선임이 생일 축하한다며, 카톡을 보냈었습니다.
그동안 힘들고, 괴롭고 했던 순간들이 헛 되진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위의 선임들이 전부 전역하고 제가 최 선임자가 되었을 때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동기들은 이전의 선임처럼 나태해져 가는데, 저는 그러긴 싫었거든요.
며칠 전에 사지방에서 컴퓨터 로그인을 하는데, 전역일이 38일이 남았답니다.
남은 휴가를 빼면 그 보다 훨씬 적어지겠죠
사실 좀 허무했습니다.
간부, 선임 가릴 것 없이 인정도 받았고, 후임들에게도 열심히 하는 성실한 선임으로 기억에 남았지만
이 군생활이 정말 저에게 도움이 되는 나날들이었나 싶습니다.
앉아있기도 힘들어진 제 허리에서 통증이 느껴질 때는, 후회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 처럼 짬 좀 먹었다고 좀 뺀질거려볼 걸 싶네요.
그래도 후임들의 말 한마디한마디에 위로가 되는 요즘입니다.
아직도 안 믿기지만, 제 전역일이 다가오는게 많은 생각이 들어서 한번 써보았습니다.
다들 주말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남자 새끼가 디진다는 소리는 말고..
주위시선 잊고 합법적인 일은 그 어떤것도
좋으니 열심히 일해서 몫돈 모아봐라
통장에 돈 쌓이는거 만큼 재미있는 삶이 없다.
그러다 보면 니 옆에 이쁜 여친 생긴다.
누구나 다 죽을 만큼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헛소리 말고 부모님과도 잘 지낼려고 노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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